영화 리뷰

취준생,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

아일랜 2024. 6. 30. 22:06

 

영화의 제목인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에서 '모라토리움(Moratorium)' 은 한 국가가 경제, 정치적인 이유로 외국에서 빌려온 차관에 대해 일시적으로 상환을 연기하는 것을 말하는 경제 용어다.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도 그랬고, 나중에 다시 찾아봤을때도 느꼈지만 정말 한 번에 외우기 어려운 영화 제목이다. 게다가 뜻을 찾아보기 전까지는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감도 안잡힌다. 이제는 '모라토리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았다. 그렇다면 경제와 관련된 영화일까 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영화는 '모라토리움' 이라는 용어에서 파생된 '모라토리움 신드롬' 과 관련되어있다. '모라토리움 신드롬' 이란 지적, 육체적으로는 완전한 성인이 되었지만 성인이 되는 것을 잠정적으로 미루어 두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데 쉽게 말하면 사회인으로써의 책임과 의무를 짊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을 하지 않는다 정도?)

영화 속 주인공인 '다마코'는 '모라토리움 신드롬'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학은 졸업했지만 사회로 나갈 준비는 커녕 생각조차 하지 않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그녀가 집에서 하는 일이라곤 빈둥대기, 만화책 보기, TV 보기 뿐이다. 반복되는 그녀의 모습에서 생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고, 그냥 무기력해보인다. 그렇다고 혼자서 딸을 보살피는 아버지를 돕는 것도 아니다. 빨래, 청소, 요리 등 모든 집안일은 아버지의 몫이 되었고 다마코는 단지 아버지의 그늘 아래서 아주 편안한 삶을 보내고 있다. 초반부에 다마코는 정말 답답하다. 영화 속 캐릭터를 보고 있는 나도 답답했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오죽했을까? 당연히 마음이 편할리 없었고, 어느 순간 재촉하기 시작했다. 취직활동은 하고 있는지에 대해 묻고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재촉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오히려 두어번의 계절이 지나고서는 지금의 모습으로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영화는 계절에 적응하려는 순간이 되면 다시 계절을 바꾼다. 78분이라는 아주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그 안에서의 시간은 상당히 빠르다. 그럼에도 다마코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빈둥대며 여전히 아버지의 그늘 아래서 산다. 하지만 영화의 매력은 바로 이 부분에서 나타난다. 다마코가 180도로 변하지 않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청춘은 항상 불태워야하고 아파야하며 도전해야한다 라는 말이 아닌 '조금 쉬어도 괜찮다' 라고 말해주는 영화 속 모습들이 좋은 것이다. 다마코는 성장을 멈춘 것이 아니라 그녀만의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을 뿐이다. 1년이라는 유예 기간 동안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성장했고, 이제는 나가살라는 아버지의 말에 그녀가 1년 동안 해왔던 잉여 생활은 자연스럽게 소멸됐다고 생각한다.

요즘 20대는 너무 바쁘다. 이제 막 성인이 된 20살, 한창 재밌는 시기인 20대 초반이 지나고 나면 그 나이에 맞게 해야 할 일들이 쏟아져 나온다. 학점관리, 토익, 대외활동 등 스펙도 쌓아야하고 20대가 아니면 언제 가보겠냐 라고 등 떠밀려 여행도 다녀야 한다. 누가 정한 20대의 삶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20대들이 실제로 이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대니까 더 도전해야하고, 더 아파봐야하는 20대만이 느낄 수 있는 압박감. 영화는 이 압박감을 잠시나마 떨쳐준다. 같은 시간을 가진 사람이 없듯이 누군가는 빠르게 누군가는 느리게 성장한다. 또 누군가는 화려하고 누군가는 다소 초라해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답은 없다. 그러니 누군가가 임의로 정해버린 정답에 맞출 필요는 없다. 자신만의 속도로 가다보면 언젠가 길이 보일 것이다.

 

일본 특유의 잔잔함이 돋보이는 영화다. 이렇다 할 해결책도 없이 그냥 계절의 흐름에 따라 다마코를 보고 있으면 어느새 영화는 끝이 난다.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타 영화와는 달리 현실 속에서 볼 수 있는 듯한 이야기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러니 당연히 결말이라 말할 부분도 없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은 '이게 끝?" 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당황스럽다. 하지만 이 것이 현실이라는 점이 더 좋다. 갑자기 변해서 큰 성공을 거두는 것보다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영화 속 모습이 매력적이다. 요즘 20대, 특히나 취준생이라면 공감가는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는 영화. 보고나면 일본식 집밥이 먹고 싶어지는 영화. 길지 않은 러닝타임이기에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영화라 생각한다. 다만 대사도 적고, 이렇다 할 스토리도 없기에 이런 잔잔한 일본 스타일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지루해 미칠 수 도 있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조금 쉬어가도 괜찮다고 대신 말해줄 수 있는 영화. 그렇기에 나는 지금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